양자역학을 만든 사람들은 왜 흩어졌는가
막스 보른을 따라 양자역학의 탄생과 추방, 전쟁과 핵시대, 그리고 전후의 반핵 선언까지 읽는다.
막스 보른을 중심에 놓으면, 양자역학은 몇 개의 방정식이 아니라 탄생·논쟁·추방·핵시대·반핵운동을 관통하는 하나의 인간사로 보이기 시작한다.
| 시점 | 영역 | 사건 |
|---|---|---|
| 1924.6 | 양자역학 | ◆ 보른, 논문 제목에 ‘양자역학(Quantenmechanik)’이라는 표현을 사용 |
| 1925.1 | 양자역학 | ★파울리, 배타원리 |
| 1925.6 | 양자역학 | ★하이젠베르크, 헬골란트. 관측 가능한 양만을 이용해 원자 문제를 다시 구성 |
| 1925.7.29 | 양자역학 | ◆ 하이젠베르크 논문 접수. 보른이 그 중요성을 알아보고 학술지 출판을 추진 |
| 1925.9.27 | 양자역학 | ◆ 보른–요르단, 교환관계 pq−qp=h/2πi 정식화. 훗날 보른의 묘비에도 새겨진 식 |
| 1925.11 | 양자역학 | ★디랙, 같은 구조를 푸아송 괄호와 연결해 독자적으로 정식화 |
| 1926.1.27 | 양자역학 | ★슈뢰딩거 파동방정식 |
| 1926.6.25 | 양자역학 | ◆ 보른의 확률해석. 파동함수를 입자의 실제 물질파가 아니라 확률진폭으로 읽는 전환 |
| 1926.12.4 | 양자역학 | ◆ ★아인슈타인 → 보른: “그분(der Alte)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.” |
| 1927.3.23 | 양자역학 | ★하이젠베르크, 불확정성 원리 |
| 1927.10 | 양자역학 | ◆ ★제5차 솔베이 회의. 보른–하이젠베르크가 「양자역학」 공동 주보고 |
| 1927.10 | 양자역학 | ◆ 두 사람은 새 양자역학을 사실상 ‘닫힌 이론(closed theory)’으로 제시. 같은 회의에서 드브로이의 파일럿파, 슈뢰딩거의 파동역학, 아인슈타인의 비판이 교차 |
| 1927.10 | 양자역학 | ★보어는 토론 과정에서 상보성을 제시. 보어–아인슈타인 논쟁이 양자역학 해석사의 상징으로 자리잡기 시작 |
| 1928.1 | 양자역학 | ★디랙 방정식. 상대론과 양자역학을 결합하고 전자의 스핀을 자연스럽게 포함 |
| 1928 | 양자역학 | ◆ 보른, 괴팅겐 방문자들에게 “물리학은 6개월 안에 끝난다”는 취지의 발언 |
| 1928 | 삶의 단절 | ◆ 보른, 과로와 신경쇠약으로 연구 활동에 큰 차질 |
| 시점 | 영역 | 사건 |
|---|---|---|
| 1930 | 천체물리 | ★찬드라세카르, 인도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상대론적 효과를 적용해 백색왜성 질량에 상한이 있다는 핵심 아이디어를 발전시킴. 이후 수년에 걸쳐 정교화 |
| 1931 | 양자역학 | ★디랙, 반물질 예측 |
| 1932 | 양자역학 | 앤더슨, 양전자 발견 |
| 1932 | 양자역학 | 채드윅, 중성자 발견 — 물리학은 보른이 농담했던 ‘6개월’ 안에 끝나지 않음 |
| 1932 | 천체물리 | ★란다우, 붕괴한 별이 거대한 원자핵 같은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서술 — 중성자 발견 직전 작성된 중성자별 개념의 초기 형태 |
| 1935.1 | 천체물리 | ★에딩턴, 왕립천문학회에서 찬드라세카르의 결론을 공개 반박 |
| 1935.5 | 양자역학 | ★EPR 논문 — 아인슈타인·포돌스키·로젠, 양자역학의 완전성에 문제 제기 |
| 1935.11 | 양자역학 | ★슈뢰딩거 「양자역학의 현재 상황」 — 고양이 사고실험과 ‘얽힘’이라는 표현 |
1933년은 과학이 멈춘 해가 아니라, 과학자들의 지도가 찢어진 해였다.
| 시점 | 영역 | 사건 |
|---|---|---|
| 1933.3.28 | 삶의 단절 | ★아인슈타인, 프로이센 학술원 사임. 독일 국적 이탈 의사를 밝히고 사실상 독일과 결별 |
| 1933.4.7 | 삶의 단절 | 직업공무원제 재건법 시행. 유대계와 정치적 반대자를 대학·공직에서 제거하기 시작 |
| 1933.4.17 | 삶의 단절 | 프랑크, 1차대전 참전 경력으로 당장은 면제될 수 있었지만 공개 항의하며 자진 사임 |
| 1933.4.25 | 삶의 단절 | ◆ 보른, 괴팅겐 교수직 직무정지 |
| 1933.5 | 삶의 단절 | ◆ 보른, 독일을 떠남 |
| 1933.5 | 삶의 단절 | 영국 Academic Assistance Council 설립. 망명 학자들의 일자리와 정착 지원 |
| 1933.9.12 | 핵개발 | 실라르드, 런던 신호등 앞에서 핵연쇄반응 착상. 실제 핵분열 발견보다 5년 앞섬 |
| 1933.10.17 | 삶의 단절 | ★아인슈타인, 프린스턴 도착 |
| 1933 | 삶의 단절 | 미국의 망명 학자 지원위원회 활동 본격화 |
| 1933.12.10 | 삶의 단절 | ★하이젠베르크·★슈뢰딩거·★디랙이 스톡홀름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. ◆ 보른은 이미 괴팅겐을 떠나 케임브리지에 있던 시기 |
| 1934.3.24 | 삶의 단절 | ★아인슈타인, 나치 정부에 의해 독일 국적 박탈 |
| 시점 | 영역 | 사건 |
|---|---|---|
| 1935 | 삶의 단절 | ◆ 보른, 라만의 초청으로 인도 방갈로르 체류 |
| 1936 | 삶의 단절 | ◆ 보른, 에든버러 대학에 정착 |
| 1937.7 | 삶의 단절 | SS 기관지, ★하이젠베르크를 상대성이론·양자역학을 옹호하는 ‘백색 유대인’으로 공격 |
| 1938.3 | 삶의 단절 | 오스트리아 안슐루스. ★파울리의 국적 문제 악화 |
| 1938.4 | 삶의 단절 | ★란다우, 소련에서 체포. 1년 뒤 카피차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석방 |
| 1938.7.13 | 삶의 단절 | 리제 마이트너, 나치를 피해 오스트리아·독일권을 탈출해 네덜란드로 넘어감. 이후 스톡홀름 정착 |
| 1938.9 | 삶의 단절 | ★슈뢰딩거, 그라츠 대학에서 밀려난 뒤 오스트리아 탈출 |
| 1938.12 | 핵개발 | 한–슈트라스만, 우라늄 실험에서 예상 밖의 바륨 생성 확인 |
| 1938.12.19 | 핵개발 | 한 → 망명 중인 마이트너에게 실험결과를 편지로 전달 |
| 1938–39 | 핵개발 | 마이트너–프리시, 결과를 핵분열로 이론적으로 해석 |
| 1939.8.2 | 핵개발 | ★아인슈타인–실라르드 편지. 실라르드가 중심이 되어 작성하고 위그너·텔러도 과정에 관여. 루스벨트에게 핵연쇄반응의 군사적 가능성 경고 |
| 1939.9.1 | 천체물리 | ★오펜하이머–스나이더 「계속되는 중력 붕괴에 관하여」 — 현대적 중력붕괴 블랙홀 모델의 출발점 |
| 1939.9.1 | 역사 | 같은 날 독일, 폴란드 침공. 제2차 세계대전 시작 |
| 시점 | 영역 | 사건 |
|---|---|---|
| 1940.3 | 핵개발 | 프리시–파이얼스 메모. 비교적 적은 양의 우라늄으로 폭탄이 가능할 수 있음을 계산 |
| 1940 | 삶의 단절 | 두 사람은 ‘적성국 외국인’이라는 이유로 기밀 레이더 연구에서 배제되어 있었고, 역설적으로 핵분열 연구에 집중할 여지가 생김 |
| 1940.7 | 삶의 단절 | ★파울리, 프린스턴 도착 |
| 1940.10.1 | 삶의 단절 | ★아인슈타인, 미국 시민권 취득. 스위스 국적은 계속 유지 |
| 1941.9 | 핵개발 | ★보어–하이젠베르크 코펜하겐 회동. 핵무기와 전쟁을 놓고 정확히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지금도 논쟁적 |
| 1942.12.2 | 핵개발 | 페르미, 시카고에서 최초의 제어 핵연쇄반응 CP-1 성공 |
| 1943.3 | 핵개발 | ★오펜하이머,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 |
| 1943.9 | 삶의 단절 | ★보어, 체포 위험을 피해 어선으로 스웨덴 탈출 → 영국 → 미국. 로스앨러모스에서는 Nicholas Baker라는 가명 사용 |
| 1944.12 | 핵개발 | 로트블랫, 독일의 원폭 개발 위협이 사라졌다고 판단하고 도덕적 이유로 로스앨러모스를 떠난 대표적 사례 |
| 1945.6.11 | 핵개발 | 프랑크 보고서. 일본에 대한 원폭의 무경고 사용에 반대. 실라르드 등 참여 |
| 1945.7.16 | 핵개발 | 트리니티 핵실험 |
| 1945.8.6 | 핵개발 | 히로시마. 팜홀에 억류되어 있던 ★하이젠베르크 등 독일 핵과학자들이 라디오로 소식을 들음 |
| 1945.8.9 | 핵개발 | 나가사키 |
| 시점 | 영역 | 사건 |
|---|---|---|
| 1954 | 양자역학 | ◆ 보른, 노벨물리학상. “양자역학의 근본적 연구, 특히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” |
| 1954.6 | 삶의 단절 | ★오펜하이머, 보안인가 박탈 |
| 1954 | 삶의 단절 | ★디랙, 미국 입국·비자 문제로 프린스턴 방문이 무산됨 |
| 1955.4.11 | 핵시대 이후 | ★아인슈타인, 러셀의 선언문에 서명 의사를 전달 |
| 1955.4.18 | ★아인슈타인 사망 | |
| 1955.7.9 | 반핵 | ◆ 러셀–아인슈타인 선언 발표. 보른 포함 11명 서명 |
| 1957.4.12 | 반핵 | ◆ 괴팅겐 18인 선언. 보른과 ★하이젠베르크가 같은 선언문에 서명 |
| 1957.7 | 반핵 | 제1차 퍼그워시 회의 |
1920년대에 양자역학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1930년대에는 국적과 정치 때문에 흩어지고, 1940년대에는 그 물리학이 핵무기로 이어지는 것을 보았으며, 1950년대에는 다시 과학자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경고하게 된다.
| 업적 | 업적 시점 | 노벨상 | 걸린 시간 |
|---|---|---|---|
| ★보어 · 원자모형 | 1913 | 1922 | 9년 |
| ★아인슈타인 · 광양자 가설 | 1905 | 1921년도 / 1922 시상 | 16년 |
| ★하이젠베르크 · 행렬역학 | 1925 | 1932년도 / 1933 시상 | 7년 |
| ★슈뢰딩거 · 파동역학 | 1926 | 1933 | 7년 |
| ★디랙 · 상대론적 양자역학 | 1928 | 1933 | 5년 |
| 채드윅 · 중성자 | 1932 | 1935 | 3년 |
| 앤더슨 · 양전자 | 1932 | 1936 | 4년 |
| ★파울리 · 배타원리 | 1925 | 1945 | 20년 |
| ◆ 보른 · 확률해석 | 1926 | 1954 | 28년 |
| ★란다우 · 초유동 이론 | 1941 | 1962 | 21년 |
| 베테 · 별의 에너지원 | 1938 | 1967 | 29년 |
| 카피차 · 초유동 | 1938 | 1978 | 40년 |
| 펜지어스·윌슨 · 우주배경복사 | 1964 | 1978 | 14년 |
| ★찬드라세카르 · 별의 구조와 진화 연구 | 1930년대 | 1983 | 약 반세기 |
| ★펜로즈 · 특이점 정리 | 1965 | 2020 | 55년 |
| ★킵 손 외 · 중력파 관측 | 2015 | 2017 | 2년 |
| 벨 → 클라우저 → 아스페 → 차일링거 | 1964 → 1972 → 1981–82 → 1990s | 2022 | 여러 세대에 걸친 검증 |
| 인물 | 남은 이야기 |
|---|---|
| ★존 벨 | 1990년 사망. 그의 정리가 이끈 실험적 흐름은 2022년 노벨상으로 이어졌지만 노벨상은 사후 수상 불가 |
| 리제 마이트너 | 핵분열의 이론적 해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1944년도 노벨화학상은 오토 한 단독 수상 |
| 조슬린 벨 버넬 | 대학원생 시절 펄서를 최초 포착. 1974년 노벨물리학상에서 제외되고 지도교수 휴이시가 펄서 발견 공로로 수상 |
| 파스쿠알 요르단 | 행렬역학 정식화의 핵심 공저자. 이후 나치당·SA 경력이 그의 과학사적 평가에 긴 그림자를 남김 |
| ★오펜하이머 | 현대적 중력붕괴 연구와 맨해튼 프로젝트의 중심 인물. 여러 차례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함 |
| ★스티븐 호킹 | 호킹복사의 결정적인 직접 관측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2018년 사망 |